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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언 2017-01-18 14:25:00
물에 잠긴 아버지/한승원 지음 (도초면 양명희)
나 어릴 적, 산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서 꿈속에서나 나올듯한 동화 같은 외가엘 자주 갔었다. 외가에 가서는 외사촌들과 함께 외할머니 곁에 빙 둘러앉아서 옛날이야기를 듣곤 했다. 외할머니께서는 호랑이가 담배를 피던 이야기라든가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6.25전쟁 중에 참혹하게 희생되었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들려주셨다. 특히 6.25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는 외할머니께서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생생한 체험담이었기에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고도 비극적인 일이라는 것이 피부로 절절히 느껴졌다.
이번에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한승원 작가의「물에 잠긴 아버지」를 읽으면서 어릴 적 외할머니로부터 가슴 졸이며 듣던 6.25전쟁의 참상을 떠올리며 이념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얼마나 많은 양민들이 원통하게 고통을 받았고 또 희생이 되었는지 다시금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책의 내용을 빌리자면 경찰들이 마지막 빨치산 소탕작전에서 결국 희생된 아버지의 시신을 바지게에 지고 선산으로 묻으러 가는 길, 초등학생 김오현은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여 거적때기에 쌓여 바지게의 한쪽 끝으로 삐져나온 시신의 피 묻은 맨발을 보며 그 뒤를 졸졸 따라갔었다. 엄연한 사실이지만 도무지 인정하기 어려웠고 슬퍼할 마음의 여유도 가질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외롭고 힘들 때마다 아버지의 피 묻은 맨발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런 가슴 아픈 트라우마는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네 명의 형들까지 모두 6.25전쟁 통에 비명횡사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할아버지와 단둘이서 그 비극의 현장인 흉가에서 살게 되었고 기구한 삶 속에서 김오현은 강직한 할아버지의 의지를 저버릴 수 없어 주체가 되지 못하고 항상 객체로 살아가야한다. 김오현은 죽은 아버지와 형들을 대신하여 김 씨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장남의 역할이 주어졌고 할아버지는 손자를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와 참혹한 결핍들을 해소시키려고 시도하였다. 김오현의 한 평생은 일관되게 그 트라우마와 결핍을 해소시키고 채우는 일에 바쳐진 삶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인 김오현을 장가보내는 날,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큰 절을 하고 무릎을 꿇은 모습은 끝내 내 눈물샘을 자극하고 말았다. 무릎을 꿇은 채 오늘의 경사가 있게 해준 마을 사람들에게 은혜를 잊지 않겠노라고 외치는 할아버지는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할아버지 모습이었다.

할아버지의 의지대로 김오현은 다산성의 아내를 만나서 11남매를 낳았다. 하지만 많은 식솔을 거느리는 가장의 어깨는 그만큼 무거워졌고 서울로 올라가 셋방살이를 면하지 못하는 최하층민으로 전락한다.
공부 머리가 비상한 장남 일남이가 판검사가 되어서 풍비박산 난 집안을 다시 일으키리라는 희망과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연좌제라는 굴레 속에 희망은 또다시 무산되고 다른 자식들이라도 잘 교육시켜서 일남에게 걸었던 또 다른 희망을 시도하지만 고향땅에서 야반도주하는 신세로 전락한 김오현은 인구 천만의 괴물도시 서울에서 위험하고 어려운 직업,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로 하는 직업을 전전하며 살게 되었다.
굽이굽이 어려운 세상을 혼자서 헤쳐 나가느라 정신이 팔려 고향 산천에서 댐이 건설되고 선산을 옮겨야 하는 때를 놓치는 바람에 사기꾼들에게 조상의 유골을 모두 도둑맞고 결국 시신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현실에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남의 조상 유골까지 파헤쳐 없애 버리는 사람들의 세태를 읽을 수 있었다.
김오현이 서울에서 도시의 사냥꾼으로 살아가며 11남매의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에 눌려 세상을 두려워하고 겁먹고 주눅 들어 소심하고 비굴하며 누구의 감정도 다치지 않게 하여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눈치를 살피며 비실비실 웃어 보이고 비위를 맞추려 하는 무골호인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대목에서 공교롭게도
그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오신 나의 아버지 - 도시의 서민으로 살았던 그 시대 의 아버지들의 삶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가슴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주인공들이지 않은가!
김오현이 아파트 경비를 하다 운명처럼 마주친 빨치산 토벌대장 박장수에게서 자신의 아버지 김동수를 소탕했노라고 옛날이야기처럼 회상할 때, 또 박장수가 도움을 주겠노라 제의했을 때, 김오현이 자신의 정체를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망설이는 모습에서 내 머릿속에도 여러 가지 생각이 뒤엉켜서 혼란스러웠다.
만약 내가 김오현 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가 있었을까?
김오현은 시련에 부딪칠 때마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렸으며 그 말은 자신에게 삶의 철학 내지 가치관으로 굳어졌다.
“장마철의 곰팡이를 이기는 것은 가뭄이고, 가뭄을 이기는 것은 번개와 우레고 번개 와 우레를 이기는 것은 햇볕이고, 그 햇볕을 이기는 것은 꽃그늘이다…”
김오현은 박장수의 도움을 받아 창고관리 일로 살아가면서 행운이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장수의 눈에 순하고 착하게 보인 것이 행운을 가져다주었지만...., 한편 토벌대에게 포위되어 전투를 벌이다가 부하들을 잃은 후 자기의 총으로 자결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며, 그 행운은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김오현이 절망하지 않고 좌절에서 벗어나는 힘이 되었다.
한 시대의 아픔이었던 이념의 갈등이니 대립이니 하는 말도 이제는 생경해지고 앞으로는 별로 사용하지 않은 단어가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한반도는 아직도 이념으로 인한 분단의 시대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모든 방면에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첨단시대에 낡아 빠진 이념보다도 자국의 실리를 최우선시하는 세계 속에서 이념의 논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남과 북이 손을 맞잡고서 보다 나은 내일을 설계해야 하는 국가적 명분 앞에「물에 잠긴 아버지」는 격랑 속에 허우적거리던 옛 모습을 거울삼아 두 번 다시는 이런우를 범하지 말라는 지침서로 다가온다.
사시사철 비릿한 바닷바람이 불어대는 이곳 서남해안 끄트머리 외딴 섬마을의 작은 도서관에는 토요일마다 몰려오는 순박한 꼬맹이들이 있다. 나는 이 꼬맹이들에게 그 옛날 외할머니로부터 생생하게 들었던 6. 25 전쟁 관련 가슴 아픈 이야기와 [물에 잠긴 아버지]의 줄거리를 들려주고 언젠가 육지로 행차할 때 기회를 봐서 작품속의 배경이 된 장흥 댐이라도 찾아가서 [물에 잠긴 아버지] 김오현을 하루빨리 물 밖으로 끌어내어 트라우마를 해소하고 결핍을 채우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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